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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돌멩이의 작심삼일 탈출기: 논문을 중심으로</title>
    <link>https://rolling-dolmeng.tistory.com/</link>
    <description></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Thu, 4 Jun 2026 08:05:01 +0900</pubDate>
    <generator>TISTORY</generator>
    <ttl>100</ttl>
    <managingEditor>굴러라 김돌멩</managing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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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돌멩이의 작심삼일 탈출기: 논문을 중심으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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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논문 읽기/예술] 아마추어의 실수 사진이 현대 예술사진에 끼친 영향</title>
      <link>https://rolling-dolmeng.tistory.com/5</link>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8&quot;&gt;&lt;b&gt;제목&lt;/b&gt;: 아마추어의&amp;nbsp;실수&amp;nbsp;사진이&amp;nbsp;현대&amp;nbsp;예술사진에&amp;nbsp;끼친&amp;nbsp;영향&lt;/p&gt;
&lt;p data-ke-size=&quot;size18&quot;&gt;&lt;b&gt;저자&lt;/b&gt;:&lt;span&gt;&amp;nbsp;&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박상우&lt;/span&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8&quot;&gt;&lt;b&gt;발행일&lt;/b&gt;: 2017.12.22.&lt;/p&gt;
&lt;p data-ke-size=&quot;size18&quot;&gt;&lt;b&gt;발행처&lt;/b&gt;:&lt;span&gt; 현대미술학 논문집, 21(2), pp.5-29 &lt;/span&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8&quot;&gt;&lt;b&gt;URL: &lt;a href=&quot;http://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7294443&quot;&gt;http://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7294443&lt;/a&gt;&lt;/b&gt;&lt;/p&gt;
&lt;hr contenteditable=&quot;false&quot; data-ke-type=&quot;horizontalRule&quot; data-ke-style=&quot;style1&quot; /&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사진을 공부하려면 아마추어 사진가의 등장을 반드시 면면이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진이 전문가들 고유의 영역이었던 시절과 카메라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시절의 작품은 명확히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아마추어 사진'으로 검색해보니 꽤 흥미로운 제목의 논문 하나가 상단에 보였다. 아마추어들의 '실수'가 예술에 영향을 끼쳤다니. 내가 궁금해했던 바로 그 내용들이 담겨 있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논문은 제법 만족스러웠다. 아마추어의 실수는 1920~30년대의 아방가르드 미술가들에 의해 예술 사진이란 이름으로 재분류 되었고 그 때부터는 더는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표현법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무엇이 에러 사진으로 생각되곤 했는지, 어떤 방식으로 실수가 기법으로 전환되고 사진이 '자유로워졌는지', 이 전환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일련의 과정을 훑어보자니 참 흥미로웠다.&lt;/p&gt;
&lt;hr contenteditable=&quot;false&quot; data-ke-type=&quot;horizontalRule&quot; data-ke-style=&quot;style1&quot; /&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1. 초창기 아마추어 실수 사진과 그 기준&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휴대용 카메라의 발명은 1888년이었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에 카메라를 구매한 비전문가들이 읽으면 좋을 매뉴얼들이 만들어졌다. 과하거나 부족한 노출, 빗맞은 초점, 흔들린 피사체 등 디지털 카메라가 우세해진 지금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 외에 인화지 오염, 다중노출 등 필름 카메라 특유의 문제점들도 포함되는 게 흥미로웠다. 이들은 전문가들이 세운 '잘 찍은 사진'의 기준에서 어긋나므로 실수라고 일컬어졌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논문의 저자는 논의를 더 전개하기 전에 사진 세계를 세 개 권역으로 나눴다. 프로페셔널 사진, 예술 사진, 아마추어 사진. 위에서 얘기한 기준은 전문가 사진의 공간에서는 유효했으나, 대중 예술 시대가 발 빠르게 도래하며 탄생한 나머지 두 곳에서는 환영받지 못했다고 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전문가들이 아마추어의 사진을 실수로 낙인 찍고 기피한 덕에, 뭐든지 예술일 수 있다고 외치던 현대 미술의 트렌드가 실수 사진들을 품었다. 예술 사진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말이다. 아방가르드 미술가들은 새로운 예술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탐험가였다. 실수 사진은 기존 전문가들이 오류로 인식하고 기피하던 것. 달리 말하자면 새로운 것으로 가득한 노다지였다. 탐험가는 이런 땅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사진을 이용해 기록이 아닌 표현을 하고자 했던 초현실주의자 등의 미술가들은 예술 사진이란 분야로 점점 더 많은 형태의 이미지를 끌어들였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실수가 아닌 예술로 인정받는 사진이 늘어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논문의 저자는 바로 몇 문단 뒤에 시간이 흐르면서 재평가된 사진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더불어, 일반 대중이 카메라를 잡고 아마추어라는 이름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한 이후로 전문가들이 찍는 것들과 본질적인 목적부터가 다른 사진들이 양산되기 시작했다. 앞서 나열된 기준들은 이런 목적의 차이를 간과했다고 논문의 저자는 서술하고 있다. 가령, 아마추어들은 상업적인 목적이나 작품을 만들기 위한 목적보다는 추억을 기록하는 용도로 사진을 찍었다. 사진 결과물에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등장한다면 그건 기술적인 완성도와 무관하게 목적을 잘 달성한 좋은 사진일 수도 있는 거다. 전문가들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예술 사진도 아닌 사진들이 아마추어 사진으로써는 충분히 가치를 지니기도 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2. 실수 사진이 20세기 전반 아방가르드 사진에 미친 영향&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아마추어 실수 사진이 예술 사진으로 탈바꿈하는 현상은 1920~30년대에 가장 활발했다고 한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겠다는 일념 하에 미술계 전반에서 아마추어와 실수가 주목 받던 시기였다. 인상적이었던 건 이런 전환을 선언하는 듯한 책 한 권이었다. '&lt;a title=&quot;here comes the new photographers!&quot; href=&quot;https://www.moma.org/interactives/objectphoto/publications/769.html&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여기, 새로운 사진가들이 왔다&lt;/a&gt;(Es kommt der neue Fotograf!)'라는 제목의 책에는 만 레이를 비롯한 아방가르드 사진가들이 대거 등장한다. 그들은 좋은 사진을 규정하는 규칙을 부정하고 한때는 실수로 보였던 것을 실험이라고 불렀다. 결국 책은 실수의 모음집이 아니라 새로운 사진의 실험대로 받아들여졌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a title=&quot;모홀리 나기&quot; href=&quot;https://ko.wikipedia.org/wiki/%EB%AA%A8%ED%99%80%EB%A6%AC_%EB%82%98%EA%B8%B0&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모홀리 나기&lt;/a&gt;는 한 단계 더 나아갔다. 그에게 실수 사진은 실험임과 동시에 사진의 매체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방법이었다. 논문의 저자는 그림자가 함께 찍힌 사진에 대해 보다 심도 있게 논하며 예시를 든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3. 그림자와 아방가르드 사진&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그러니까, 촬영자의 그림자가 함께 사진에 들어가는 상황 말이다. 프레임을 만드는 사람의 노골적인 출현이 사진의 객관성을 해친다는 이유로 촬영자와 카메라가 사진에 등장하는 게 기피되고는 했다. 하지만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사진이 객관적인 매체가 아님을 공표하기 위해서 이와 반대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적극적으로 촬영자의 그림자를 프레임에 침투시켰다. 모홀리 나기는 사진이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 아닌 또 하나의 창작물이라고 생각했다. 인위성은 사진의 한 성질이고 이를 숨기는 건 사진 매체의 잠재력 하나를 파묻는 거다. 그는 창작자가 드러나야 더 본질적인 사진이 된다고 주장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게다가, 그림자란 빛에 의해 생기는 것 아닌가. 사진의 작동 원리는 근본적으로 빛에 의존한다. 따라서 그림자를 사진에 담는다는 건 사진의 근원에 닿는 일이다. 그림자는 3차원의 세계가 2차원의 평면으로 투사된 존재임도 잊지 말자. 결국 작가의 그림자가 나온 이미지는 사진을 만들어내는 존재들 - 촬영자와 카메라, 빛과 그림자, 투사와 환원 - 모두를 담고 있다. 분석해보면 &lt;a title=&quot;모홀리 나기의 그림자 사진&quot; href=&quot;https://64.media.tumblr.com/a3b1af9773f76b7baa730d5bf8c1670e/tumblr_p9izdsk7Fi1r1w31so1_500.jpg&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그림자 사진&lt;/a&gt;을 환상적으로 여긴 모홀리 나기를 이해할 수 있다. 빛과 사진의 근원을 탐색하는 데에 열중한 모홀리 나기는 &lt;a href=&quot;https://monthlyart.com/encyclopedia/%ED%8F%AC%ED%86%A0%EA%B7%B8%EB%9E%A8/&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포토그램&lt;/a&gt; 기법으로도 많은 작품을 남겼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4. 반영과 아방가르드 사진&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이 대목이 내게 놀라움을 줬다. 지금 세계는 사울 레이터의 유리창 반영 사진에 열광한다. 일부러 유리창에 비친 거리의 모습을 창문 너머의 내부와 겹쳐 촬영하면서 #saulleiterinspired 등의 해시태그와 함께 인스타그램에 게재하는 게 유행이다. 반영 사진이 한 때는 실수로 취급되었다는 건 크진 않지만 그래도 충격이었다. 곰곰 생각해보니 다중노출 이미지 역시 실수로 생각되던 시절이니 비슷한 효과를 일으키는 유리 반영 사진들이 곱게 보이진 않았겠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논문엔 &lt;a href=&quot;https://ko.wikipedia.org/wiki/%EC%99%B8%EC%A0%A0_%EC%95%84%EC%A0%9C&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외젠 앗제&lt;/a&gt;가 진열창 사진을 많이 남겼다고 서술되어 있다(이유는 모른다고도 서술되어 있다). 그의 사진들은 1920~30년대의 초현실주의 사진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그 선봉장이 바로 만 레이. 그는 앗제의 영향을 받아 유리창 사진을 많이 찍었고, 해당 작업을 '초현실적인 사진'이라고 선언했다. 이때부터 반영 사진은 실수의 영역에서 벗어나 예술이 되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예술이라고 명명된 후로 반영 사진엔 그것이 왜 예술인지에 대한 많은 설명이 따라붙었다. 가령 그것이 현대인이 세상을 동시다발적으로 인지하는 지각 방식과 유사하다든지. 아니면 유리창이 이질적인 오브제를 병렬 배치하는 것과 같은 '몽타주'를 자연스럽게 만들어낸다든지.&lt;/p&gt;
&lt;hr contenteditable=&quot;false&quot; data-ke-type=&quot;horizontalRule&quot; data-ke-style=&quot;style1&quot; /&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지금의 예술 세계는 내게 혼란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무엇이든'이라는 말로 자유처럼 보이는 것을 건네지만, 모든 사람들이 '무엇이든' 아름답게 받아들이는 건 아니니까. 각자는 취향을 가지고 가치관을 가지므로 개개인에 따라 무엇이 미학적 가치를 지니고 그렇지 않고가 달라진다. 다른 취향을 가진 개인이나 집단이 충돌하면 혼돈이 태어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하지만 이런 혼란스러운 세계가 되어준 덕에 내가 좋아하는 유형의 사진들이 실수가 아닌 예술로 인정받았다. 사진을 찍을 때 전문가들의 의견이 아닌 내 취향을 따를 수 있게 됐다. 나는 대중 예술의 한 가운데를 체험하고 있는 거다.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찍은 사진을 사진 전문가가 아닌 '미술가'들이 발견하고 예술로 인정했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사진이 과연 예술일까, 하는 케케묵은 질문과도 닿아있는 역사인 것 같고. 조금 더 공부해봐야겠다.&lt;/p&gt;</description>
      <category>논문 읽기</category>
      <author>굴러라 김돌멩</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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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rolling-dolmeng.tistory.com/5#entry5comment</comments>
      <pubDate>Wed, 23 Feb 2022 00:35:16 +0900</pubDate>
    </item>
    <item>
      <title>[논문 읽기/예술] 사진에서의 윤리적 문제</title>
      <link>https://rolling-dolmeng.tistory.com/4</link>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8&quot;&gt;&lt;b&gt;제목&lt;/b&gt;: 사진에서의 윤리적 문제&lt;/p&gt;
&lt;p data-ke-size=&quot;size18&quot;&gt;&lt;b&gt;저자&lt;/b&gt;: &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박제영 ( Jaeyong Park ) , 손영실 ( Youngsil Sohn )&lt;/span&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8&quot;&gt;&lt;b&gt;발행일&lt;/b&gt;: 2013.12.30.&lt;/p&gt;
&lt;p data-ke-size=&quot;size18&quot;&gt;&lt;b&gt;발행처&lt;/b&gt;: &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한국기초조형학회 기초조형학연구 Vol.14(6) pp.167-177&lt;/span&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8&quot;&gt;&lt;b&gt;URL&lt;/b&gt;: &lt;a href=&quot;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9032993&quot;&gt;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9032993&lt;/a&gt;&lt;/p&gt;
&lt;hr contenteditable=&quot;false&quot; data-ke-type=&quot;horizontalRule&quot; data-ke-style=&quot;style1&quot; /&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자신의 책 '&lt;a title=&quot;사진에 관하여&quot; href=&quot;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42922&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사진에 관하여&lt;/a&gt;'에서 수잔 손택은 사진을 찍는 행위를 그 대상을 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사진 촬영이란 피사체에 대한 소유욕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했다. 사진 촬영자와 그의 피사체는 썩 동등하지 않다. 촬영자가 카메라 뒤에 숨은 동안 피사체는 해체되고 재조립되며 복제되고 배포된다. 그것은 다소 폭력적인 과정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피사체가 사물이나 풍경이라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겠다. 사람이 들어서면 문제가 생긴다. 사람과 사람은 원칙적으로 동등하니까. 그게 인권이니까. 카메라를 받침대 삼아 기울어진 모델과 포토의 관계는 어딘가 기괴하고 비정상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델을 존중하며 그의 있는 그대로를 담는 걸로는 만족할 수 없으면서도 동시에 모델을 연출의 도구로 사용하자니 죄책감에 짓이기는 게 지금 내 상태다. 나는 혼란 속에 있다. 이 어지럼증이 가실 때까지 한동안 복제 가능한 예술의 윤리성을 탐색할 것 같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이번에 읽은 논문은 새로운 인사이트를 제공하진 않았다. 다만 역사적으로 자주 논의되었던 쟁점들을 정리하고 사례를 모아두었다는 데에서 의미 있었다. 이번 글은 이들 쟁점과 각각에 해당하는 사례를 짧게 요약하고 끝낼까 한다.&lt;/p&gt;
&lt;hr contenteditable=&quot;false&quot; data-ke-type=&quot;horizontalRule&quot; data-ke-style=&quot;style1&quot; /&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첫 번째 쟁점: 인권, 사진 작가의 개입 범위&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퓰리처상이 제정된 이후로 이 논의가 끊인 적이 있었나 모르겠다. 사진계의 오래되고 가장 고전적인 논쟁일지도 모르겠다. 위험에 처한 대상을 보았을 때, 사진 작가는 그를 구하기 이전에 셔터를 누른다. 이런 사진이 공개되면 그는 세계적인 비난을 받고는 한다. 논문에서는 케빈 카터(Kevin Carter)의 사례와 우마르 아바시(R. Umar Abbasi)의 사례를 꼽았다. 케빈 카터가 찍은 '&lt;a title=&quot;수단의 굶주린 소녀&quot; href=&quot;http://photovil.hani.co.kr/66808&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수단의 굶주린 소녀&lt;/a&gt;'와 우마르 아바시가 찍은 &lt;a title=&quot;뉴욕 포스트 우마르 아바시&quot; href=&quot;http://mimg.segye.com/content/image/2012/12/05/20121205022409_0.jpg&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뉴욕 포스트의 보도 사진&lt;/a&gt;은 공통적으로 죽음의 문턱에 걸친 사람들을 담고 있다. 둘은 비난을 피할 수 없었고, 케빈 카터는 결국 자살을 택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두 번째 쟁점: 사진의 조작 가능성&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사진 편집의 역사는 포토샵이 발명되기 이전으로까지 돌아간다. 필름 사진만 존재하던 시대에도 사람들은 필름을 물리적으로 조작하는 등의 방식으로 렌즈를 투과한 현실을 왜곡했다. 예술이 아닌 정치적 목적으로 사진이 조작된 채 보도될 경우 군중을 선동하거나 거짓된 정보로 대중을 호도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게 &lt;a title=&quot;스탈린 사진 조작&quot; href=&quot;http://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203/05/htm_2012030520114640104011.jpg&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스탈린을 담은 사진&lt;/a&gt;이라고 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논문에서는 연출된 사진 역시 '조작'의 범주로 다루고 있다. 로버트 마스의 &lt;a title=&quot;루마니아 인종 학살 참상 조작&quot; href=&quot;https://www.jungle.co.kr/image/72e9e0794c43a50ee7a08af0&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루마니아 인종 학살 사진&lt;/a&gt;이 대표적이다. 다만 나는 연출이란 섬세하게 다뤄져야 하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논문에서는 보도 목적이 아닌 사례에서는 연출이 작가의 의도와 예술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음을 짚었다. 인용한 사례는 '&lt;a title=&quot;파리 시청 앞의 키스&quot; href=&quot;https://img.khan.co.kr/news/2017/08/24/l_2017082501003232700264291.webp&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파리 시청 앞의 키스&lt;/a&gt;'였다. (두 모델이 연기한 사랑에 열광하던 소비자들은 그것이 연출된 이미지임을 알고 분노하기도 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세 번째 쟁점: 초상권&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요 근래 &lt;a href=&quot;https://eyesmag.com/posts/140952/Piknic-Saul-Leiter-Exhibition&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사울 레이터 사진전&lt;/a&gt;이 국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lt;a title=&quot;candid photography&quot;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Candid_photography&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캔디드 사진&lt;/a&gt;은 다소 낯선 영역이지만, 이 낯섦을 넘어설 정도로 레이터의 사진이 아름다웠는지도 모르겠다. 사울 레이터가 활동했던 파리와 뉴욕은 거리 사진의 본거지라고 여겨질 정도로 캔디드 사진이 보편적었다.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는 거리 사진가들은 그런 분위기를 부러워하기도 한다. 국내에선 거리 사진을 찍다가 저 멀리 지나던 행인이 '사진 지워달라'며 다가왔다는 류의 경험담이 속출한다. 소심한 마음에 차마 사람은 찍지 못하는 나도 애완견을 카메라에 담았다가 견주에게 '사진 지워주세요. 그리고 찍지 마세요.'라는 말을 들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찍히는 사람의 불쾌함은 이해한다. 19년도 가을, 홍대에서 버스킹을 보다가 버스커 너머로 객석을 촬영하는 사진가를 본 적이 있다. 카메라 뒷편이 익숙했던 나는 길쭉한 렌즈가 나를 바라보자 당혹감에 휩싸였다. SNS에 그 사진이 올라올까 싶어 한동안 인스타그램을 뒤적였던 기억이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거리 사진에서 초상권 문제 역시 언제나 뜨거운 감자다. 논문에서는 아바스가 찍은 '&lt;a href=&quot;https://www.jungle.co.kr/image/50e944194e3abe19febf12ab&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세계 청년의 날&lt;/a&gt;'이란 사진과 뤼크 들라예의 '&lt;a href=&quot;https://www.jungle.co.kr/image/83a05a3541e78a3c45617a5d&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타자&lt;/a&gt;'를 사례로 다루고 있다. 특히 들라예의 주머니에 손을 감춘 채로 셔터를 누르며 지하철 승객을 몰래 촬영하는 방식은 논란의 여지가 많아 보인다. 놀랍게도 이 사건은 재판에서 무죄로 판결났다. 법정은 표현의 자유에 방점을 찍어준 거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초상권 논란은 몇 번의 무죄 판결로 일축되지 않았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기 시작하고, 인터넷을 통해 무분별한 재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어느 때보다도 뜨거운 감자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조만간 아마추어 사진가들에 대한 논문도 찾아봐야지.&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네 번째 쟁점: 전쟁 사진&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첫 번째 논점과 결을 같이 하지만, 작가에게 면죄부를 줄 여지가 더 크다고 생각된다. 종군 사진 기자는 전쟁터에 발을 담그면서 자신의 목숨마저도 벼랑 끝에 내던진다. 피사체를 도와주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나는 그저 셔터를 누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고 변명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논문에서는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Horst_Faas&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호르스트 파스&lt;/a&gt;(Horst Faas)가 군중의 광분에 못 이겨 사건에 직접 뛰어들지 못하고 이미지만 담아왔다고 설명한 사례를 다루고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다섯 번째 쟁점: 도용과 저작권&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논문에서는 &lt;a href=&quot;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4191&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카보우르 백작의 사진의 무단 복제&lt;/a&gt;를 두고 벌어진 재판을 예시로 들었다. 해당 재판에서 법원은 처음으로 사진을 예술로 인정하고,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해줬다고 한다. 이런 논의와 함께 SNS 상에서 사진의 무단 복제와 배포를 다루고 있다. 사진을 불법 복제하는 건 간편하고 보편적이다. 저작권법이 엄연히 존재하지만, 너무 공공연해서 하나하나 재판하고 처벌하는 게 어려울 지경이지 싶다. 이 지점과 관련해서 NFT와 예술을 공부해보고 싶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여섯 번째이자 마지막 쟁점: 표현의 자유와 도덕적 윤리&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내가 다시 예술 논문을 읽기 시작한 이유에 가장 근접한 논점이다! 사진은 이제 단슨히 현실을 재현하는 걸 넘어서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 표현이 성적이거나 폭력적이면 논쟁의 중심으로 휩쓸려 들어간다. 포토샵과 합성이 대세인 지금에도 사진은 현실을 기본 골자로 삼고 있어서 그런지 사진에 담긴 외설적인 모습, 불쾌한 모습은 다른 매체에 같은 모습이 담겼을 때보다도 더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모양이다. 논문은 &lt;a href=&quot;https://www.hani.co.kr/arti/culture/music/984860.html&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로버트 메이플소프(Robert Mapplethorpe)가 찍은 사진들&lt;/a&gt;과 안드레스 세라노(Andres Serrano)의 &lt;a href=&quot;https://images.chosun.com/resizer/FQGWFHadzi9mVBNVwHIy9fJHlPQ=/480x577/smart/cloudfront-ap-northeast-1.images.arcpublishing.com/chosun/OMNBIZ6P5LN3DLKRSUXBLQCGLE.jpg&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십자가 사진&lt;/a&gt;을 예시로 다루고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모델과 포토의 관계를 다뤄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남성 포토가 여성 모델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사진을 찍는 건 생각보다 흔하다. 그 과정에서 &lt;a href=&quot;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81/0002918229?sid=001&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성희롱&lt;/a&gt;과&amp;nbsp;&lt;a href=&quot;https://www.ajunews.com/view/20180228204016944&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성추행&lt;/a&gt;, 극단적인 경우엔 성폭력이 일어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만들어진 사진이 배포되고 재생산되면서 2차적인 가해, 성희롱 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성별을 떠나서 여성 포토가 남성 모델에게, 여성이 여성에게 또는 남성이 남성에게 비슷한 류의 폭력을 가할 수 있다. 영화 감독에 대해 배우가 '을'의 입장이 되는 상황을 생각하면 된다.&lt;/p&gt;
&lt;hr contenteditable=&quot;false&quot; data-ke-type=&quot;horizontalRule&quot; data-ke-style=&quot;style1&quot; /&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수많은 터부와 도덕적 결벽증 속에서 살아가는 시대이다. 여섯 가지 쟁점을 정리하고 나니 넘어선 안 되는 정지선을 사방에 그어둔 기분이다. 조금 찝찝한 기분으로 글을 마친다.&lt;/p&gt;</description>
      <category>논문 읽기</category>
      <author>굴러라 김돌멩</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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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rolling-dolmeng.tistory.com/4#entry4comment</comments>
      <pubDate>Thu, 3 Feb 2022 17:15:35 +0900</pubDate>
    </item>
    <item>
      <title>[논문 읽기/철학] 기계론에서 행복론으로</title>
      <link>https://rolling-dolmeng.tistory.com/3</link>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8&quot;&gt;&lt;b&gt;제목&lt;/b&gt;: 기계론에서&amp;nbsp;행복론으로:&amp;nbsp;라메트리의&amp;nbsp;기계론과&amp;nbsp;생명,&amp;nbsp;죽음,&amp;nbsp;그리고&amp;nbsp;행복&lt;/p&gt;
&lt;p data-ke-size=&quot;size18&quot;&gt;&lt;b&gt;저자&lt;/b&gt;: 여인석&lt;/p&gt;
&lt;p data-ke-size=&quot;size18&quot;&gt;&lt;b&gt;발행일&lt;/b&gt;: 2014.12.&lt;/p&gt;
&lt;p data-ke-size=&quot;size18&quot;&gt;&lt;b&gt;발행처&lt;/b&gt;: 한국의철학회 의철학연구 18 p.33-51&lt;/p&gt;
&lt;p data-ke-size=&quot;size18&quot;&gt;&lt;b&gt;URL&lt;/b&gt;: &lt;a href=&quot;http://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6092503&quot;&gt;http://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6092503&lt;/a&gt;&lt;/p&gt;
&lt;hr contenteditable=&quot;false&quot; data-ke-type=&quot;horizontalRule&quot; data-ke-style=&quot;style1&quot; /&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문득 파우스트가 불쌍한 삶을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과 메피스토펠레스의 내기로 인해 그는 가장 행복한 순간, 가장 붙잡고 싶은 순간에 죽을 것이 예정된 세월을 살았다. 그를 떠올리며 내 불안에 대해서도 곰곰이 되새겨봤다. 어느 임계치를 넘어선 행복감을 느끼면 나는 불안을 느낀다. 돌연사하는 개복치를 떠올린다. 오늘 밤 침대에서 눈을 감으면 다시는 눈 뜨지 못할 거라는 공포가 엄습한다. 당장의 행복감을 지속시키고 싶은 마음이 자라나 행복의 필연적인 끝 - 그러니까, 죽는 것 - 을 더욱 무서워하도록 만드는 것이리라 결론을 내렸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다른 사람들은 행복과 죽음을 어떻게 대하는지 궁금해져 논문 검색 사이트에 '행복 죽음'이라고 검색했다. 노년과 잘 죽는 것을 다룬 논문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아직 노년까지 한참이 남았다. 그리고 심장마비와 돌연사에 대한 두려움은 웰-다잉으로 극복할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별 소득 없이 스크롤을 내렸다. 내리고 내리디가 마침내 라메트리의 기계론을 다룬 이 논문을 발견한 것이다. 나는 라메트리가 누구인지 모르고, 기계론과 유물론 등등에 지식이 많진 않지만(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논문 제목에 행복과 죽음이 함께 등장하므로 지금부터 알아가보기로 했다.&lt;/p&gt;
&lt;hr contenteditable=&quot;false&quot; data-ke-type=&quot;horizontalRule&quot; data-ke-style=&quot;style1&quot; /&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기계론과 유물론&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논문을 읽기 전에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Mechanical_philosophy&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기계론&lt;/a&gt;과 &lt;a href=&quot;https://ko.wikipedia.org/wiki/%EC%9C%A0%EB%AC%BC%EB%A1%A0&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유물론&lt;/a&gt;이 뭔지 대략은 알고 있어야 하겠지 싶어 인터넷을 뒤적였다. 보아하니 라메트리는 의사였고, 기계론과 유물론 모두 의사와 제법 잘 어울리는 이론이었다. 신과 영혼으로 세상을 설명하던 관점에서 벗어나는 걸음이었다. 기계론(mechanical philosophy)은 자연을 물리학으로 설명하려는 노력이다.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Clockwork_universe&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우주를 시계에 빗댄 설명&lt;/a&gt;이 기계론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시침이 지금 12시를 가리키고 있다면, 그 시계는 한 시간 전에는 11시를 가리켰었고 한 시간 후에는 1시를 가리킬 예정이다. 이렇듯 세상이 물질과 그 운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물리 법칙에 따라 현재 상태로부터 과거와 미래를 추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계론을 주장한 많은 학자가 생명체를 구성하는 '원자'의 존재를 긍정했고, 중력이나 관성 등 물리학적인 개념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데카르트와 홉스가 대표적이고, 뉴턴도 그들과 교집합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유물론(materialism)은 만물의 본질을 정신이 아니라 물질이라고 주장하는 이론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하는 상당히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특히 라메트리는 사실상 기계론과 관점을 함께 하는 '기계적 유물론'을 주장한 사람 중 하나였다. 기계적 유물론자들은 세상을 물질에 작용한 물리 법칙으로 설명하려고 했다. 다만 인간의 정신을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는 의견이 갈렸다. 데카르트와 같이 정신과 물질을 별개의 것으로 보는 이원론자가 있는가 하면, 정신을 물질의 한 가지 성질로 보는 등 그 둘을 하나로 통합하는 일원론자가 있다. &lt;a href=&quot;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1780224&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라메트리는 일원론자에 속한 것 같다&lt;/a&gt;.&lt;/p&gt;
&lt;hr contenteditable=&quot;false&quot; data-ke-type=&quot;horizontalRule&quot; data-ke-style=&quot;style1&quot; /&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생명체의 발생과 우연&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이제 본격적으로 논문을 읽어보자.&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해당 논문은 라메트리의 책 '에피쿠로스 체계'로 논의를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동물의 탄생과 죽음을 서술해뒀다. 라메트리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당시에 제기된 여러 학설을 차용한다. 여기서 한 가지 알아둘 점이 있는데, 라메트리는 1700년대 초반에 태어나 18세기를 살아간 인물이다. 그 시대의 생명과학이 지금과 같은 주장을 했을 리 없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에피쿠로스 체계'에서 라메트리는 &lt;a href=&quot;https://ko.wikipedia.org/wiki/%EC%A0%84%EC%84%B1%EC%84%A4&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전성설&lt;/a&gt;을 지지한다. 전성설은 '씨앗' 안에 이미 작은 존재가 들어있고, 그것이 수정된 뒤에 적당한 크기로 자라난다는 주장이다. 이 씨앗들은 공기 중에 항상 떠다니다가 자신과 같은 종의 (수컷) 개체에게 이끌려서 코와 입 속으로 들어간다. 몸 속에 들어간 씨앗은 생식기에 자리 잡고 체온을 받아 숙성되다가 여자의 몸 속으로 들어가면 난자와 만나 자란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그렇다면 최초의 인간은 어디에서 발생했는가? 라메트리는 최초의 인간이 땅에서 잉태되었다는 주장을 받아들였다. 공기 중에 떠다니던 '인간 씨앗'이 땅과 만나서 인간이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는 땅에서 태어난 태초의 인간들은 지금과 다소 다른 모습이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자연이 '실수'를 많이 하기 때문이다. 그들 중에서 생식에 필요한 기관이 모두 갖춰진 개체들만 살아남고 보존되어 지금과 같이 인류를 구성했다는 게 라메트리의 주장이다. 신이 인간을 만들었듯 특정 목적을 가지고 모든 신체 기관들이 창조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은 목적이랄 게 없는 우연의 산물이었다는 것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라메트리는 찰스 다윈보다 100년 가량 일찍 태어난 인물이다. 그런 그가 라마르크보다 다윈에 가까운 진화적 관점을 가졌다는 게 내게 놀랍게 다가왔다. 물론 라메트리가 받아들이고 주장한 것들엔 엉뚱한 내용이 더 많다. 땅에서 최초의 인간이 태어났다는 것만 해도 그렇다. 그러니까 라메트리는 진화를 이해하고 주장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적자생존 자연선택은 이해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라메트리가 우연을 자연의 기본 작동 원리로 채택한 것은, 자연이 만약 어떤 목적을 가지고 변화하는 거라면 자연재해와 같은 해로운 일들 또한 의도되었다고 결론지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에게 자연은 악한 존재가 아니었다. 자연이 생명을 만든 것은 우연이었기에 생명을 죽이는 것 역시 우연의 산물이어야 한다. 자연이 우연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은 결국 자연을 조작하는 초월자가 없다는, 기계론적인 발상으로 귀결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존재들의 연속성&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우리가 생태계와 진화와 먹이사슬을 배우듯, 라메트리의 시대와 그 이전에도 생명체 간의 관계에 대한 연구가 있었다. 논문에서는 그것을 '존재들의 연쇄'에 대한 이야기라고 부른다. 라메트리는 모든 생명체들이 서로 연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개체 간의 유사성을 관찰하며 자신의 주장을 구체화했다. 그는 심지어 '&lt;a href=&quot;http://www.yes24.com/Product/Goods/92901741&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식물로서의 인간&lt;/a&gt;'이라는 책도 집필했다. 자신의 글에서 라메트리는 동물과 식물의 유사성을 짚으며 그들이 서로 연속적이고 이어져있음을 강조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라메트리의 연속성에 대한 근거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모든 생명체가 동일한 재료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동물도, 식물도, 모두 '같은 반죽으로 만들어졌고 효모만 다른' 존재들이다. 생명체의 발생은 식물에서 출발해 &lt;a href=&quot;https://ko.wikipedia.org/wiki/%ED%8F%B4%EB%A6%BD&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폴립&lt;/a&gt;을 거쳐 동물로, 동물 중에서도 인간을 향해 이행하는 명확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이 방향성은 생명체 간의 우열을 강조하는 것 같지만, 이들은 결국 같은 본질에서 비롯됐으므로 적당한 교육을 받은 다음에 서로의 역할을 대신 할 수도 있다는 게 라메트리의 생각이다.&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또 다른 하나는 구조가 연속적이라는 사실이다. 인간과 다른 동물들의 감각기관과 내장 구조를 비교해보면 여러모로 유사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동물들도 눈으로 보고, 코로 냄새를 맡으며, 입으로 소리를 내고 먹이활동을 한다. 위장으로 소화를 시키고 대장을 거쳐 배설한다. 뇌의 모양도 상당히 유사하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연속성에 대한 라메트리의 생각을 요약하자면, 그는 생명체들이란 어떤 '조직'들로 구성된 '조직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조직의 다양성이 결국 서로 상이한 조직체의 발현으로 이어졌지만, 이들이 모두 조직들로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연속성을 가진다. 생명체를 구성하는 단위를 생각했다는 점에서 다시금 그가 기계론적 유물론자임을 확인할 수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기계론과 행복론&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이제 본격적으로 라메트리의 생각이 행복과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살펴볼 차례다. 아직까지는 라메트리와 진화론 이전의 생명과학에서 어떻게 행복에 대한 메세지가 도출된 건지 알 수 없었다. 이제 논문 저자가 나를 놀래킬 차례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저자 여인석 교수는 죽음에 대한 라메트리의 견해로 논의를 시작한다. 라메트리가 자연 속 존재들을 '조직'들로 구성된 '조직체'로 봤다고 조금 전에 설명했었다. 인간을 조직체, 하나의 기계로 간주하면 보통과는 조금 다른 휴머니즘을 가지게 된다. 지극한 기계론자는 인간의 범죄행위까지도 자연의 이치를 따른 어떤 기계의 행동으로 취급한다. 따라서 인간의 부도덕성에 염증을 앓지 않고 포용할 수 있게 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그런 라메트리에게 죽음이란 조직체의 조직들이 흩어지는 현상일 뿐이다. 영혼이 빠져나가 천국으로 향하거나, 심판을 받아 지옥으로 떨어지는 일은 없다. 그는 죽음을 슬프고 엄숙한 결말로 조명하기보단 하나의 물리적인 과정일 뿐이라며 슬픔을 거세했다. 죽음이란 무(無)이고, 무에서 유로 발생한 우리가 무로 돌아가는 거라고, 시계가 돌고 돌아 다시 자정에 도달한 거라고 설명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죽음 이후엔 아무것도 없으므로 우리는 살아있는 시기를 행복하게 보내야 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얘기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 수 있는 걸까. 여기, 논문에 인용된 라메트리의 말을 재인용하겠다.&lt;/p&gt;
&lt;blockquote data-ke-style=&quot;style2&quot;&gt;우리는 모두 반(反)-스토아주의자가 될 것이다. 이 철학자들은 슬프고 엄격하며 고집스럽다. 우리는 쾌활하며 다정하고 관대할 것이다. 그들은 온통 영혼이며 자신들의 육체를 무시한다. 우리는 온통 육체이며 우리의 영혼을 무시한다. 그들은 쾌락과 고통에 둔감하다. 우리는 쾌락과 고통을 느끼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길 것이다. 그들은 숭고한 것들을 열망하며 모든 사건들 위로 올라가기를 원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인간이 되기를 그치는 한에서만 진정한 인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지배하는 것들을 통제하려 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감각에 명령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지배와 우리의 복종을 인정할 것이다.&lt;/blockquote&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그는 육체에서 비롯되는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 말한다. 우리는 모두 육신을 가지고 태어나 죽을 때까지 육신을 지닌 채 살아간다. 이런 맥락에서 라메트리는 건강을 강조했다고 한다. 우리 그가 의사였다는 점을 잊지 말자. 우린 육신이 느끼는 감각들을 체험하면서 하나의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 깨달음은 바로 생명이란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고 죽음이란 어려운 게 아님이다. (다른 종류의 학식은 우리의 행복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데, 그것들을 탐구하느라 인생을 낭비하는 건 바보짓이라고 한다. 참말로 공부하기 싫게 만드는 주장이다.) 우리는 그저 삶의 무상함을 느끼면서 죽음을 불안해하지 않고 마음의 평화를 온전히 누려야 한다. 내가 누리는 감각에 행복해하고, 죽음을 두려워 말고, 그렇다고 그것을 갈망하며 서두르지도 말고 운명이 흘러가는 대로 흔들흔들 따라가는 것이 라메트리가 생각한 이상적인 삶의 모습인 것 같다.&lt;/p&gt;
&lt;hr contenteditable=&quot;false&quot; data-ke-type=&quot;horizontalRule&quot; data-ke-style=&quot;style1&quot; /&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상당히 재밌는 논문이었다. 과학과 종교의 합의점을 보는 듯했다. 다윈 이전의 18세기 생명과학은 무속신앙을 연상시켰다. 과학으로부터 삶에 대한 관조적인 태도를 이끌어낸 것도 다분히 종교적으로 보였다. 21세기의 과학에 길들여져있던 내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읽는 내내 지루하지 않았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라메트리의 관점에선 파우스트가 전혀 불쌍하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파우스트는 자신의 일생을 신앙과 공부에 바쳤던 사람이었지만, 악마와의 내기를 시작한 이후부터 자신의 모든 감각을 동원해 쾌락적인 삶을 살아낸다. 그는 행복감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죽는데, 이는 달리 생각하면 죽음의 순간까지도 행복했다 말할 수도 있지 않겠나. 그러니까 파우스트는 충분히 잘 살다가 떠난 사람인 거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나는 여전히 내가 돌연사하는 상상을 한다. 하지만 이 공포감을 일상 속으로 가지고 들어오면 내 유한한 행복은 흐트러져버릴 것이다. 행복의 유한함을 인정하고 최대한 건강하게 누리려고 애써보자.&lt;/p&gt;</description>
      <category>논문 읽기</category>
      <category>18세기 철학자</category>
      <category>기계론</category>
      <category>논문리뷰</category>
      <category>논문읽기</category>
      <category>라메트리</category>
      <category>유물론</category>
      <category>인문학</category>
      <category>철학</category>
      <category>행복</category>
      <author>굴러라 김돌멩</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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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rolling-dolmeng.tistory.com/3#entry3comment</comments>
      <pubDate>Wed, 20 Oct 2021 18:17:54 +0900</pubDate>
    </item>
    <item>
      <title>[논문 읽기/예술]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의 특성이 발현된 사진, 영화 매체 분석</title>
      <link>https://rolling-dolmeng.tistory.com/2</link>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8&quot;&gt;&lt;b&gt;제목&lt;/b&gt;: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의 특성이 발현된 사진, 영화 매체 분석 - 만 레이, 랄프 깁슨 그리고 영화 &amp;lt;기생충&amp;gt;을 중심으로 -&lt;/p&gt;
&lt;p data-ke-size=&quot;size18&quot;&gt;&lt;b&gt;저자&lt;/b&gt;: 김지민, 김지희&lt;/p&gt;
&lt;p data-ke-size=&quot;size18&quot;&gt;&lt;b&gt;발행일&lt;/b&gt;: 2021.09.30.&lt;/p&gt;
&lt;p data-ke-size=&quot;size18&quot;&gt;&lt;b&gt;발행처&lt;/b&gt;: 유럽문화예술학논집 Vol.12(2) p.75-93&lt;/p&gt;
&lt;p data-ke-size=&quot;size18&quot;&gt;&lt;b&gt;URL&lt;/b&gt;:&amp;nbsp;&lt;a href=&quot;http://lps3.www.earticle.net.libproxy.snu.ac.kr/Article/A399645&quot;&gt;http://lps3.www.earticle.net.libproxy.snu.ac.kr/Article/A399645&lt;/a&gt;&lt;/p&gt;
&lt;hr contenteditable=&quot;false&quot; data-ke-type=&quot;horizontalRule&quot; data-ke-style=&quot;style1&quot; /&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푸코의 저서를 몹시 좋아하는 친구가 하나 있었다. 내가 푸코를 읽기 시작한 건 그 친구 덕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나는 시간이 많지 않았고, 푸코는 책을 길게 쓰는 편이었다. 그래서 푸코가 쓴 가장 짧은 책을 찾다가 헤테로토피아를 발견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그 뒤로도 헤테로토피아라는 개념을 탐구할 기회가 종종 있었다. 예를 들면 지리학 보고서를 쓸 때라든지. 나에게 화장실은 - 특히 공중화장실은 - 흥미로운 공간이었고, 나는 그곳을 '내가 발견한 헤테로토피아'라고 불렀다. 보고서 점수가 썩 좋지는 않았다. 공부하는 동안 즐거웠으니까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 보고서를 쓸 때가 아니어도 헤테로토피아는 내가 공간을 바라보는 시각에 입체감을 줬다. 그것은 내가 특정 공간에서 느끼는 신비감에 이름을 줬다. 유용한 개념이었고, 그래서 제법 마음에 들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그러다가 이 논문을 발견했다. 엉뚱하게도 나는 만 레이에 대해 찾아보고 있었다. 최근에 영화 '&lt;a href=&quot;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57645&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미드나잇 인 파리&lt;/a&gt;'를 봤고, 거기엔 &lt;a href=&quot;https://ko.wikipedia.org/wiki/%EB%A7%8C_%EB%A0%88%EC%9D%B4&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만 레이&lt;/a&gt;라는 초현실주의 사진가가 등장했다. 대단한 우연으로 얼마 뒤에 나는 친구와 초현실주의 사진에 대해 대화를 하게 됐고, 그는 내게 만 레이를 알아볼 것을 권유했다. 약 이틀의 간격을 두고 하나의 이름이 반복되니 찾아보지 않는 게 더 어색하게 느껴졌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헤테로토피아와 만 레이가 한 제목에서 언급된 이 논문은 검색 결과의 상단에 있었다. 상당히 매력적인 제목이었다. 논문이 새로운 사실을 배우는 데에 상당히 유용한 수단이란 건 진작에 알고 있었다. 그런 매체에서 헤테로토피아를 초현실주의 사진과 함께 다룬다니.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모여있는 선물 세트를 발견한 거다. 기분이 고조됐다. 마트 과자 코너에서 초코칩 쿠키를 충동구매하듯이 논문을 다운로드하였다. 조금 설렜다고도 할 수 있겠다. (설레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블로그를 만들어서 장문으로 기록하고 있지도 않았겠지.) 아래는 이 논문의 기록이다.&lt;/p&gt;
&lt;hr contenteditable=&quot;false&quot; data-ke-type=&quot;horizontalRule&quot; data-ke-style=&quot;style1&quot; /&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1. 만 레이&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개인적으로 이 논문에서 마음에 들었던 점은 연출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만 레이의 사진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었다. 화보 사진/패션 사진에서 연출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요즘 우리는 사진이 재현한 현실이 얼마나 비현실적이었는지에 대해 더 이야기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포토샵을 이용하면 '현실을 증명하는' 사진의 성질을 얼마든지 비틀 수 있는 지금이기에 더더욱 우연성보단 의도와 연출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논문에서는 초현실주의 사진작가가 만들어내는 비현실적인 현실을 '모순'이라고 부른다. &lt;a href=&quot;https://www.anatomyfilms.com/man-ray-dada/&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만 레이의 사진들&lt;/a&gt;을 보면 왜 모순이라고 불렀는지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을 거다. 그는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사물들을 나란히 늘어놓는&amp;nbsp;&lt;a href=&quot;https://ko.wikipedia.org/wiki/%EB%8D%B0%ED%8E%98%EC%9D%B4%EC%A6%88%EB%A7%9D&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데페이즈망&lt;/a&gt; 기법을 사용하고는 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만 레이의 수많은 초현실적 작업물 중에서 논문의 저자가 대표작으로 꼽은 것은 &lt;a href=&quot;https://www.tate.org.uk/art/artworks/man-ray-lenigme-disidore-ducasse-t07957&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L'Enigme d'Isidore Ducasse&lt;/a&gt;(1920년 作)이다. 제목을 번역하자면 'Isidore Ducasse의 수수께끼' 쯤 되겠다. 재봉틀을 담요로 감싸고 끈으로 칭칭 동여맨 형태의 작업물이다. 프랑스 작가인 Isidore Ducasse의 은유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고 알려져있다.&lt;/p&gt;
&lt;blockquote data-ke-style=&quot;style2&quot;&gt;Beautiful as the accidental encounter, on a dissecting table, of a sewing machine and an umbrella.&lt;/blockquote&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어떤 논리가 아닌 순수한 우연에 의해 마주한 이질적인 두 개 이상의 오브제들이 모순을 만들어냈다. 시구 속의 재봉틀이 우산을 만났듯이, 사진 속의 재봉틀이 담요와 노끈을 만났다. 논문의 저자는 이렇듯 상호관계가 없어 보이는 사물들의 병치, 데페이즈망이 만드는 모순이 곧 헤테로토피아적 이미지를 만든다고 서술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origin-width=&quot;256&quot; data-origin-height=&quot;192&quot; data-filename=&quot;tate.jpg&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m4gSz/btrg10jwQy6/QcMcU58gosDickKc7lxli1/img.jp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m4gSz/btrg10jwQy6/QcMcU58gosDickKc7lxli1/img.jpg&quot; data-alt=&quot;만 레이, &amp;amp;amp;lt;L&amp;amp;#39;Enigme d&amp;amp;#39;Isidore Ducasse&amp;amp;amp;gt;, 1920, TATE (https://www.tate.org.uk)&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m4gSz/btrg10jwQy6/QcMcU58gosDickKc7lxli1/img.jp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m4gSz%2Fbtrg10jwQy6%2FQcMcU58gosDickKc7lxli1%2Fimg.jpg&quot; data-origin-width=&quot;256&quot; data-origin-height=&quot;192&quot; data-filename=&quot;tate.jpg&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gt;&lt;/span&gt;&lt;figcaption&gt;만 레이, &amp;lt;L'Enigme d'Isidore Ducasse&amp;gt;, 1920, TATE (https://www.tate.org.uk)&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내 흥미를 끌어당긴 것은 그 이후의 이야기들이다. 원래의 오브제는 사진으로 기록됐고, 오래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고 한다(만 레이는 오로지 사진을 찍기 위해 오브제를 만들곤 했다). 그러다가 1971년엔 재봉틀을 사용하지 않고 외관만 재현한 10개의 레플리카가 만들어졌다. 나는 이 복제품들이 오리지널의 헤테로토피아적인 성격을 더 강조했다고 생각한다. 담요를 걷어내지 않는 이상, 우리는 그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재봉틀이 아닌 것들을 이용해서 복제품을 만드는 게 가능했던 것이다. 원본 작품을 사진으로 기록해뒀다고 해도, 사진은 재현일 뿐이고 이미지일 뿐이어서 저 담요를 열고 내용물을 확인할 길이 없다. 결국 만 레이의 작품은 제봉틀이 존재함과 존재하지 않음 사이에서 모순에 빠진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유명한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선언한 파이프 그림처럼 말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b&gt;2. 랄프 깁슨&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랄프 깁슨은 '낯설게 보기'의 귀재로 묘사된다. 그가 일상적인 대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관객들에게서 '무의식의 세계'를 끌어냈다고 한다. 랄프 깁슨은 사진을 명확하게 찍지 않는다. 무엇을 찍은 사진인지 바로 알 수 없도록 지나치게 확대하거나, 빛과 그림자를 이용해 일부를 가리기도 한다. 게다가 그는 명확한 제목도 짓지 않았다. 대략 분류만 할 뿐이다. 가령, 극적인 대비를 활용해 찍은 일련의 작품들은 전부 '&lt;a href=&quot;http://www.ralphgibson.com/1971-2000-chiaroscuro.html&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Chiaroscuro&lt;/a&gt;'로 불린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origin-width=&quot;374&quot; data-origin-height=&quot;576&quot; data-filename=&quot;chiaroscuro.jpg&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bbl8Ff/btrg7HiEdOl/SJGUvEjzOcBGKyGuKBiTMk/img.jp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bbl8Ff/btrg7HiEdOl/SJGUvEjzOcBGKyGuKBiTMk/img.jpg&quot; data-alt=&quot;랄프 깁슨, &amp;amp;amp;lt;Chiaroscuro&amp;amp;amp;gt; 中, 1971-2000, Ralph Gibson (http://www.ralphgibson.com/)&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bbl8Ff/btrg7HiEdOl/SJGUvEjzOcBGKyGuKBiTMk/img.jp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bbl8Ff%2Fbtrg7HiEdOl%2FSJGUvEjzOcBGKyGuKBiTMk%2Fimg.jpg&quot; data-origin-width=&quot;374&quot; data-origin-height=&quot;576&quot; data-filename=&quot;chiaroscuro.jpg&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gt;&lt;/span&gt;&lt;figcaption&gt;랄프 깁슨, &amp;lt;Chiaroscuro&amp;gt; 中, 1971-2000, Ralph Gibson (http://www.ralphgibson.com/)&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논문에서는 이런 불명확함이 사진에 관객 개개인의 경험이 스며들 틈새를 열어준다고 말한다. 롤랑 바르트가 '푼크툼'이라고 불렀던 것 말이다. 하나하나의 작품이 개인화되고 그것에 상상이 투영되면 감상자의 유토피아가 사진 속에 구현되는 효과가 생긴다. 이 유토피아는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환상이 아니다. 사진이지 않은가. 사진 속의 대상은 현실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했다. 그 대상은 하나의 헤테로토피아 - 현실에 존재하는 유토피아 - 로 변모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3. 기생충&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제 영상에 대한 이야기다. 여기서는 헤테로토피아의 특성 중 '모순'보다는 '특이성'에 집중한다. 저자는 영화가 헤테로토피아적 공간을 시각적으로 구현했다고 말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논문에서는 기생충에 등장하는 박 사장의 저택이 현실에 구현된 환상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공간이라고 설명한다. 가상의 사건이 전개되는 가상의 장소라는 환상성에도 불구하고 저택은 우리가 현실에서도 볼 수 있을 법한 모습으로 표현되었다는 것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저자들은 저택에서도 거실과 계단을 콕 집어 다뤘다. 거실은 박 사장 가족의 부유함과 사회적 지위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공간이다. 동시에 주인공인 기우(최우식)가 그리던 유토피아의 현존이며, 그의 욕망이다. 주인공이 기어코 박 사장의 저택에 들어서는 데에 성공하고 그의 가족이 거실에 둘러앉아 파티를 벌일 때 기우의 유토피아는 더는 이상향이 아니고 현실이 된다. 헤테로토피아가 되는 것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영화 속에는 계단이 여럿 등장한다. 각기 다른 곳에서 촬영한 이후 이어 붙여 가상의 공간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계단을 타고 올라가고 내려가는 모습은 등장인물들의 계급의 상승/하강과 병치된다. 영화에서의 계단은 해당 장면이 촬영된 현실의 계단이 하는 역할을 지우고 계급 이동이라는 비유와 끝이 없이 길게 이어진 계단이라는 가상의 공간을 덮어 씌운다. 저자들은 여기에서 헤테로토피아를 발견했다.&lt;/p&gt;
&lt;hr contenteditable=&quot;false&quot; data-ke-type=&quot;horizontalRule&quot; data-ke-style=&quot;style1&quot; /&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논문의 내용은 이 정도로 정리된다. 처음 읽기 시작할 때 바랐던 대로, 연출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한 글이었다. 쉽게 읽혔고 예시는 흥미로웠다. 만 레이의 작업에 감탄하고 랄프 깁슨의 사진을 눈에 꾹 눌러 담았다. 기생충은 역시 흥미로운 영화다. 소설이나 시집이 아니라 논문을 읽은 거니까 감상평으로 쓸 말은 없다. 내 글은 여기까지 인가 보다.&lt;/p&gt;</description>
      <category>논문 읽기</category>
      <category>기생충</category>
      <category>랄프 깁슨</category>
      <category>만 레이</category>
      <category>미셸 푸코</category>
      <category>초현실주의</category>
      <category>헤테로토피아</category>
      <author>굴러라 김돌멩</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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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7 Oct 2021 13:42:18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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